우리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안 뽑는 진짜 이유가 뭘까.
Karpathy가 그린 지도
Andrej Karpathy가 GitHub에 올린 jobs 리포지토리를 봤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342개 직업 데이터를 긁어와서, 각 직업의 AI 노출도를 LLM으로 점수화한 뒤 트리맵으로 시각화하는 도구다. 면적이 고용 규모고, 색이 AI 노출도. 한눈에 보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9/10으로 가장 빨갛고, 데이터 입력 직원도 높고, 시장 조사 분석가도 7-8 영역에 걸쳐 있다.
Karpathy가 단거지만 중요한 주석을 달았다. 높은 점수는 직업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다. 변한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9/10인 건 AI가 개발을 집어삼킨다는 게 아니라, 개발자가 하는 일의 구성이 근본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실제로 개발자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 점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 직업은 지금 변형 중이다"라고 읽어야 한다.
이 툴의 핵심은 점수 자체가 아니라 파이프라인이다. BLS에서 데이터를 긁고(Playwright), Markdown으로 정제하고(BeautifulSoup), LLM에 보내서 채점하고(Gemini Flash), 트리맵으로 시각화한다. 이 파이프라인의 프롬프트를 바꾸면 AI 노출도 대신 "휴머노이드 로봇 노출도"나 "오프쇼어링 리스크"로 같은 트리맵을 다시 그릴 수 있다. 무엇을 측정하느냐를 프롬프트 한 줄로 바꾸는 구조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
이 직업 지도를 보면서 내 자리를 생각했다. 나는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에서 IT 리서처로 일한다. 회사는 연간 매출조 단위이고 전 세계에 수만 명의 직원이 있다. 그 회사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을 솔직하게 적어본다.
신입사원을 더 이상 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신입사원이 하던 일을 AI가 가져갔다. 설문 데이터 정리, 기초 통계 산출, 경쟁사 리포트 요약, 패널 응답 클리닝 — 이런 작업들을 신입이 2-3년 하면서 감을 익혔다. 지금은 LLM 한 번 호출이면 끝난다. 신입을 뽑아서 교육하는 비용보다 API 호출 비용이 훨씬 싸다. 그래서 뽑지 않는다.
이건 우리 회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5년 투자자 발표에서 칸타르는 자동화로 1,000명 이상의 정규직(FTE) 감소를 상쇄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특히 패널 운영과 데이터 속성 부서에서 339명이 감축됐다. NielsenIQ도 2025년 내내 대대적인 인력 감축을 진행했고, 연말에도 해고가 이어졌다. 산업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6년 2월, Stanford AI 연구실 분사 스타트업 Simile이 1억 달러(약 1,300억 원) Series A를 유치했다. Index Ventures가 리드하고, Karpathy, Fei-Fei Li, Adam D'Angelo 등이 참여했다. Simile은 실제 사람의 딥 인터뷰 데이터로 디지털 트윈을 만든다. 이 트윈은 기억과 선호도와 의사결정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신제품 출시나 정책 변경을 가상 소비자 집단에게 미리 테스트할 수 있다. CVS Health, Suntory, Banco Itau가 이미 사용 중이고, 전통 포커스그룹이 몇 주 걸리던 작업을 몇 시간으로 단축한다. 85% 정확도를 주장하지만, 검증 범위가 제한적이고 EU AI Act 규제 리스크도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인사이트 산업(1,530억 달러)을 노리는 투자가 이미 들어왔다. 클라이언트가 이런 플랫폼을 쓰면, 패널 모집하고 설문 돌리고 데이터 정제하는 과정 전체를 건너뛸 수 있다. 지금은 가상 응답자로 부족하지만, 2-3년 뒤에는 달라질 수 있다.
신입이 하던 일의 대부분은 반복적인 작업이거나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데스크 리서치. 시장 데이터 모으기, 경쟁사 발표 자료 정리, 업계 통계 수집, 리포트 포맷에 맞춰서 표 만들기. 이런 일은 2-3년 하면서 감을 익히는 과정이었는데, 지금은 AI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한다. 신입을 뽑아서 교육하는 시간 동안 AI는 이미 결과물을 내놓는다.
리서치 수요 자체는 안 사라졌다. 오히려 늘었다. 하지만 종류가 바뀌었다. 클라이언트가 더 이상 일반적인 시장 개요나 소비자 프로파일링을 외부에 맡기지 않는다. 그 정도는 자기들이 가진 데이터와 ChatGPT로 충분히 뽑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카테고리에서만 의미 있는 특수한 조사", "N=3이라서 일반화가 안 되는 심층 인터뷰 분석", "10년 치 패널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는 것" — 이런 것만 리서치 펌에 의뢰한다.
결국 리서치 산업은 양끝으로 쪼개지고 있다.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조사는 AI가 가져가고, 어렵고 특수한 조사만 남는다. 중간 영역 — 템플릿 기반 정기 리포트, 업계 개요, 경쟁사 벤치마크킹 — 이 영역이 가장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건 Karpathy 툴의 트리맵에서도 보인다. 한 가지 점수로 "리서처"를 매길 수 없다. 신입이 하던 기초 작업은 노출도 9에 가깝고, 시니어가 하는 복잡한 분석과 클라이언트 컨설팅은 4-5 정도다. 같은 직업 안에서도 업무 단위로 쪼개서 봐야 진짜 그림이 나온다.
클라이언트가 리서치 펌에 맡기는 건 이제 니쉬 마켓 조사다. 일반적인 데이터로는 분석이 안 되는 영역. 특정 소비자 세그먼트를 직접 찾아야 하거나, 기존 패널 데이터로는 답이 안 나오는 질문. 예를 들어 특정 하위 카테고리에서 고관여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파악하려면, 패널을 새로 구성하고 심층 인터뷰를 돌리고 정성 데이터를 해석하는 전체 과정이 필요하다. 이건 AI 혼자 못 한다. 데이터가 없으니까. 데이터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리서치의 핵심 경쟁력인 영역이 남는다.
내가 지금 AI 도구를 직접 조립해서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tudy-clipper로 학습 자료를 자동 요약하고, blog-gen으로 글을 쓰고, Karpathy의 파이프라인 패턴을 내 업무에 적용한다. 이런 도구를 설계할 줄 아는 리서처는 "AI한테 밀려나는 리서처"가 아니라 "AI를 쓰는 리서처"가 된다. 그런데 한 발 더 나아가서, AI 파이프라인 자체를 설계할 수 있으면 대체 불가능해진다. 수집과 요약은 AI가 하지만, "무엇을 수집할지", "어떤 프롬프트로 채점할지", "결과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여전히 사람이 정한다. 그 사람이 나면 된다.
리서치 산업에서 일한다면,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몇 %가 LLM 한 번 호출로 끝나는가. 그 비율이 높을수록 빨리 움직여야 한다. 나머지 — 해석, 전략, 클라이언트와의 대화 — 그 영역을 어떻게 키울지가 다음 2-3년의 과제다.
Karpathy의 툴에서 하나 더 배울 게 있다. 그는 prompt.md라는 파일을 만들어서 342개 직업의 모든 데이터와 점수를 하나의 파일로 패키징했다. 45K 토큰짜리 파일을 LLM에 붙여넣으면, 코드 없이 AI가 직업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데이터 기반 대화를 할 수 있다. 이게 리서치의 미래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고 구조화해서, 누구나 질문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 그 뒤에 오는 해석과 대화는 인간의 몫이다.
내가 리서처로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이 위치에 서야 한다. AI가 못하는 데이터를 만들고, AI가 못하는 질문을 던지고, AI가 못하는 맥락을 읽는 사람. Karpathy가 프롬프트를 바꿔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듯, 나도 내 업무에서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을 남길지 설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직업 안에서 하는 일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