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바뀌면 프롬프트도 바뀌어야 한다. 같은 회사의 같은 제품 라인인데도 세대가 바뀌면 말투가 달라지고, 잘 먹히는 지시어가 달라지고, 심지어 기본적으로 일하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진다. Anthropic이 최근 Claude Fable 5를 다시 출시하면서 공개한 프롬프팅 가이드를 읽고 든 생각이다. 가이드 자체도 유용하지만, 더 흥미로운 사실은 "모델마다 전용 가이드가 따로 있다"는 것 자체다. AI 모델에도 성격이 있고, 그 성격에 맞는 대화법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Fable 5의 드라마 — 출시, 금지, 그리고 재런치
먼저 Fable 5가 어떤 모델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Anthropic은 6월 9일 Claude Fable 5와 Claude Mythos 5를 동시에 발표했다. 둘은 같은 기반 모델이지만, Fable 5는 일반 사용자용으로 강력한 안전 장치를 얹었고, Mythos 5는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한 방어 사이버보안용 모델이다.
그런데 이틀 뒤인 6월 12일,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출 통제를 걸었다. 외국인 접근을 전면 차단하라는 지시였고, Anthropic은 실시간으로 국적을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모든 사용자에 대해 두 모델을 일시 중단했다. 약 2주간의 조율 끝에 6월 30일 수출 통제가 해제되었고, 7월 1일부터 Fable 5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사용 가능해졌다. Claude Platform, Claude.ai, Claude Code, Claude Cowork 모든 채널에 복구되었다.
재런치와 함께 Anthropic은 Fable 5 전용 프롬프팅 가이드를 공식 문서에 올렸다. 이 가이드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어떻게 프롬프트를 잘 쓰는가"를 넘어서 "이 모델은 이전 모델과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짚고 있기 때문이다.
모델마다 성격이 다르다
내가 OpenClaw로 에이전트를 돌리면서 느끼는 건, 각 모델이 사용법이 조금씩 다르다는 거다. 성격이 있다. 어떤 모델은 지시를 주면 묵묵히 끝까지 실행하고, 어떤 모델은 중간에 질문을 던지면서 방향을 확인한다. 어떤 모델은 짧은 요청에도 정교하게 답하고, 어떤 모델은 풀어서 설명하려 든다. 같은 프롬프트를 넣어도 결과가 다르다. 모델마다 성격에 맞는 대화, 즉 프롬프트를 했을 때 성과가 훨씬 좋다.
Anthropic의 가이드는 이 관찰을 공식화한다. Claude Opus 4.8에서 Fable 5로 넘어갈 때, 프롬프트나 스캐폴딩(에이전트가 일하는 환경 구조)을 업데이트해야 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Fable 5는 이전 모델보다 지시어 따르기가 훨씬 좋아져서, 과거에는 각 행동패턴을 일일이 나열해야 했던 것을 이제는 짧은 한 줄 지시로 충분하다. 반대로 이전에는 필요 없었던 "과잉 행동 억제" 지시어가 새로 필요해지기도 했다. 모델이 똑똑해지면서, 사용자가 요청하지 않은 리팩토링이나 기능 추가를 스스로 해버리는 빈도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 조직과 비슷하다. 능력 있는 후배에게 일을 맡길 때, 덜 능력한 후배에게 쓰던 상세한 단계별 지시서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대신 "이건 범위 밖이니 하지 마"라는 경계 설정이 더 중요해진다. Fable 5가 바로 그런 후배다.
Fable 5가 달라진 점
가이드에서 강조하는 Fable 5의 핵심 변화는 이렇다. 장기 자율성이 대폭 향상되어 며칠에 걸친 작업도 중간에 지시를 잃지 않고 완수한다. 복잡하고 잘 정의된 문제에서 첫 시도에 정답을 내는 빈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비전 능력이 향상되어 복잡한 스크린샷과 기술 이미지를 더 정확하게 해석한다. 코드 리뷰와 디버깅에서 버그 발견율이 이전 모델 대비 현격히 높아졌다. 그리고 병렬 서브에이전트를 디스패치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크게 안정화되었다.
Fable 5를 아직 직접 써보진 않았지만, 가이드만 읽어도 모델의 성격이 확 바뀌었다는 게 느껴진다. 내가 매일 쓰는 GLM-5나 이전에 쓰던 모델들과도 분명히 다를 거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장기 자율성이 어느 수준까지 갈지, 과잉 행동 억제가 실제로 얼마나 통제될지. 문서만 읽고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직접 넣어봐야 안다.
이런 변화는 환호할 만하지만, 마이그레이션 관점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Fable 5는 기본적으로 한 요청에 수분에서 수시간까지 돌아간다. 이전 모델에서 잘 작동하던 동기식 클라이언트 구조가 타임아웃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Anthropic은 비동기 체크, 스트리밍, 진행 표시기를 마이그레이션 전에 먼저 갖추라고 권한다.
Effort — 새로운 핵심 컨트롤
Fable 5에서 가장 독특한 변화는 effort 레벨이다. 이전 모델에는 없던 개념인데, intelligence와 latency, cost 사이의 트레이드오프를 조절하는 다이얼이다.
- Effort 레벨 가이드:
high— 대부분의 작업 기본값xhigh— 정확도가 최우선인 민감한 작업medium/low— 루틴 작업, 빠른 인터랙티브 스타일
흥미로운 건, Fable 5의 medium이 이전 모델의 xhigh와 맞먹거나 더 낫다는 점이다. 모델 자체의 기본 능력이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effort가 높으면 높을수록 Fable 5는 context를 모으고 심사숙고하는 경향이 있어서, 루틴 작업에 high를 걸면 필요 이상으로 오래 돌아간다. 적재적소에 effort를 조절하는 감각이 새로운 스킬이 된다.
내가 주목하는 두 가지 — 장기 자율성과 과잉 행동 억제
Fable 5 가이드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장기 자율성이다. 며칠에 걸친 작업을 instruction을 잃지 않고 유지한다는데, 이게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인지. OpenClaw에서 에이전트를 돌릴 때 세션 컨텍스트가 길어지면 중간에 방향을 잃는 경우가 종종 있다. Fable 5가 이걸 얼마나 개선했는지 직접 검증해보고 싶다.
둘째는 과잉 행동 억제다. 가이드에 이런 프롬프트 예시가 있다. "Don't add features, refactor, or introduce abstractions beyond what the task requires." 내가 OpenClaw로 블로그를 만들거나 스크립트를 작성할 때, 에이전트가 요청하지 않은 리팩토링이나 에러 핸들링을 추가하는 경우가 있었다. 결과물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내가 원한 건 버그 픽스 하나인데 주변 코드까지 정리해버리면 리뷰할 분량이 늘어난다. 이 한 줄 지시어가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어느 수준까지 통제가 가능한지 궁금하다.
경험이 있다. 그것도 꽤 골치 아픈 경험. 내가 스크랩해둔 파일을 에이전트가 임의로 변경한 적이 있다. 분명히 다른 파일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작업하면서 관련 있다고 판단한 파일까지 수정해버린 것이다. 스크랩 파일은 내가 읽으려고 저장해둔 원본인데, 그 내용이 바뀌어 있으면 원문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결국 백업에서 복구해야 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에이전트를 신뢰하기 어려워진다. "이번에는 맡겨도 안전한가?"를 매번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서 과잉 행동 억제 기능이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서, 신뢰의 문제다.
이 두 가지는 OpenClaw의 AGENTS.md와 MEMORY.md 구조와 직결된다. 장기 자율성은 "에이전트가 긴 작업 동안 맥락을 유지하는 능력"이고, 과잉 행동 억제는 "에이전트가 정의된 범위 안에서만 일하는 능력"이다. 둘 다 헤드리스 에이전트 환경에서 핵심이다. 사람이 모니터링하지 않는 백그라운드 작업일수록, 에이전트가 스스로 방향을 잡고 통제하는 능력이 결과를 좌우한다.
메모리 시스템 — 이미 하고 있는 것
가이드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메모리 시스템 구축에 대한 권장이다. "Store one lesson per file with a one-line summary at the top." 한 파일에 하나의 교훈을, 첫 줄에 요약과 함께 저장하라는 거다. 이건 내가 이미 OpenClaw에서 하고 있는 방식 그대로다. MEMORY.md에 환경 설정과 중요 정보를 저장하고, memory 폴더에 날짜별 기록을 쌓는다. Fable 5는 이런 외부 메모리 시스템이 있을 때 특히 잘 작동한다고 가이드는 말한다.
다만 가이드에서 덧붙이는 뉘앙스가 좋다. "Don't save what the repo or chat history already records; update an existing note rather than creating a duplicate; delete notes that turn out to be wrong." 기록의 중복을 피하고, 틀린 기록은 지우고, 이미 있는 정보는 덮어쓰라는 거다. 이건 단순한 파일 관리 팁이 아니라, 에이전트가 자신의 기록을 능동적으로 큐레이션한다는 개념이다. 메모리를 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정리하고 버리는 것까지 포함된다.
모델을 이해한다는 것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Anthropic이 Fable 5용 프롬프팅 가이드를 따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델이 단순히 "더 똑똑해진"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GPT-3 때는 "자연어로 명령하면 된다" was the whole pitch. 이제는 모델마다 사용법이 있고, 그 사용법을 이해하는 것이 성과를 좌우한다.
내가 매일 에이전트와 일하면서 배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델의 성격을 관찰하고, 그에 맞는 대화 방식을 찾고, 환경을 조정하는 과정. 이건 일회성 스킬이 아니라 모델이 바뀔 때마다 다시 하는 작업이다. Fable 5에서 효과적이었던 프롬프트가 다음 모델에서도 통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가이드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인상적이다.
"Capability improvements at this level are also a good prompt to re-evaluate which instructions, tools, and guardrails are still needed."